소중한 이를 잃은 뒤, 다시 나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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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언젠가 가까운 사람의 상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죽음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와, 고통과 무게로 우리를 덮치는 혹독한 시련입니다.

눈물, 슬픔, 깊은 감정은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가 애도를 살아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때로는 슬픔이 길게 이어져 수년 동안 사람을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애도가 빠르게 깊은 우울로 번지기도 하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린 동생을 잃은 뒤 심한 우울을 겪게 된 29세 여성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녀는 비극이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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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한 결코 멀리 가는 것은 아니다.

공자

나스탸는 해결할 수 없고 두려운 현실 앞에 선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고통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고, 자살 사고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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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흔하지만 매우 무거운 동반자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더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내가 막지 못했을까? 왜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경험 많은 전문가들조차 자신의 내담자가 자살을 선택했을 때 이런 생각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정말 내 잘못이야. 다른 말을 했어야 했고, 다른 방식으로 물었어야 했고, 더 세심했어야 했어. 막았어야 했어. 내가 잘못했어!»

아나스타샤의 자기비난은 비극 이전부터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동생보다 더 ‘잘 풀린’ 삶을 살게 되었다고 자주 생각했고, 동생이 오랜 시간 우울과 싸우는 동안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돕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녀는 동생이 상담을 받기로 결심하도록 격려했고, 치료비를 보태 주었으며, 늘 곁에서 돕고 싶어서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스탸는 «더 했어야 했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 자신이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깊고 진실했습니다. 그 고통은 하루도 쉬지 않고 따라왔습니다.

치료 초반, 그녀는 자기비난의 이유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삶에 책임이 있었어요. 제가 제대로 돕지 못해서 비극이 일어난 것 같아요. 저는 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살렸어야 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겪는 괴로움이 정당하며,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이런 생각이 비합리적이고 오히려 해롭다는 점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저지르고 있던 핵심 인지 오류는 ‘개인화’였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아나스타샤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ok
만약 그녀가 정말로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그의 선택의 ‘원인’이라는 뜻이 됩니다.
ok
하지만 그녀는 그의 생각과 내면의 고통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깊은 우울로 몰아간 신념들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싸움이었지, 그녀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ok
그녀가 그의 상태에 대한 책임을 떠안으려 했던 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를 지지하는 일이었습니다.
ok
만약 동생의 의도를 알았더라면, 그녀는 비극을 막기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고, 숨겨져 있던 것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ok
자신을 탓하는 동안 나스탸는 마치 미래를 예견해야 하고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전제했던 셈입니다. 그런 기대는 비현실적이었고, 자신을 비난할 근거도 없었습니다.

모든 근거가 가리키는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떠안는 것은 무겁고도 부당한 실수였다는 것.

그녀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삶과 자신의 안녕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는 ‘동생을 실망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이 자신을 집어삼키도록 두었고 우울이 삶을 무너뜨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녀를 지탱해 준 선택은 죄책감을 내려놓고, 조금씩 회복하며, 다시 기쁨과 의미가 있는 삶을 배워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돌봄의 모습입니다. 치료 이후 아나스타샤의 상태는 크게 호전되었고, 그녀는 우울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자신과 내면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일어난 깊은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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